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의 자랑 입니다.

제주마의 사육역사

제주특별자치도의 삼성(三姓) 씨족 〈본관을 제주로 하는 고(高), 양(梁, 원래는 良), 부(夫)〉의 시조신화에 망아지, 송아지, 오곡 이야기가 있으며 곽지리 패총, 월령리 한들굴 등에서 출토된 말의 치아 및 사계리 해안의 말 발자국 화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석기시대 말기에서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제주지역에서 말이 서식하였을 것 으로 추정된다.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 문종 27년(1073)에 제주의 명마(名馬)를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오래전부터 사육되었음을 알 수 있고, 국가 차원의 체계적 마필관리는 고려 원종 14년(1274) 군마 생산·공급 계획에 의거 고려 충렬왕 2년(1276)에 몽골마 160마리가 제주(現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평)에 입식되었고, 이후 공민왕 23년(1374)까지 약 100년 동안 지속적으로 몽골말이 들어와 육성 및 개량되어 공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말은 군사·통신·산업용 및 외교상 교역품 등으로 수요가 많아 제주는 국마(國馬) 생산지로 매년 필요한 마필을 공급하여 왔다. 특히, 마필의 체계적 관리를 위하여 세종 12년(1430)에 한라산 기슭을 10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10소장(所場) 체계를 갖추었고, 이후 국영목장인 10소장 위·아래 경계에 돌담인 잣성을 쌓았다. 잣성은 하잣성, 중잣성 및 상잣성으로 구분되어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축조되었으며 연 1∼2만여 마리의 마필이 체계적으로 사육되었다.

팔준도첩 중 하나인 응상백

팔준은 이성계가 조선건국 전에 탔던 여덟마리의 말을 일컫는 말이다. 서리가 어린 것 같이 흰색의 말이란 뜻으로 제주말을 그린 것이 응상백이다.

곽지리패총 및 사계리 말발자국화석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어 패총 은조개를 먹은 뒤 버린 조개껍데기와 생활쓰레기가 함께 쌓여서 이루어진 유적으로 곽지리패총은 말, 소의 어금니, 사슴뼈, 돼지뼈등이 발견되어 철 기시대에 제주도에 말이 서식하였음을 보여준다. 사계리제주사람발자국과 말발자국 화석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64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구석기시대에도 제주마가 서식하였음을 보여준다.

탐라순력도(공마봉진, 1702년)

보물652호인 탐라순력도는 이형상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한달간에 걸쳐 순력하고 돌아온 후 여러가지 상황들을 28폴의 그림에 담아낸 도첩이며 그 중 공마봉진은 임금께 진상할 말들을 제주목사가 확인하는 모습으로 실경을 생생하고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